8월 3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 광장 앞에서 퀴어 시위가 열렸다. 눈은 며칠 전 나에게 그 날 그곳에 가겠다고 했다. 나는 걱정되어 조심하라는 말만 했다. 조심해라는 말을 너무 하기 싫지만, 조심해.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청 측에서 퀴어퍼레이드 행사를 모두 거절해 거절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였다. 참여자들은 레인보우 플래그와 트랜스 플래그 등 다른 정체성 플래그들과 피켓을 들고 서있었다. 곧 많은 수의 경찰들과 군인들이 와서 시위 참가자를 모두 연행해갔다고 했다. 눈은 그 장소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고 자신의 페이스북과 인스타에 올렸다. 경찰들은 시위를 하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말라고 했지만 활동가들은 움직이는 것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며 움직였다. 그리고 모두 끌려갔다. 눈은 그 장소에서 연행되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적혀있는 종이를 나눠주는 변호사를 보았다고 했다. 두 명의 활동가랑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한 레즈비언 활동가는 눈에게 무덤덤하고 차가운 어조로 '왜 여기에 왔어요? 왜 러시아에 온거에요?' 라고 했고 눈은 그 활동가의 눈동자를 보곤 에우리디케를 따라 지옥으로 간 오르페우스가 된 것만 같았다고 했다. 또 다른 게이 활동가는 '당신도 시위에 참여했나요?'라고 물었고 그 질문으로 인해 자신이 참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고 했다. 순식간에 항의 시위가 끝나고 모두가 연행되어간 뒤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돌아간 광장을 빠져오는 길. 그 광장을 다시 채우는 일상의 사람들과 관광객들. 그 순간의 괴리감과 허탈함. 눈은 끊임없이 나에게 그곳에 있었던 일과 감정을 말했다.
내가 왜 러시아에 왔지? 나의 정체성이 공격받는 이 곳에 내가 왜 왔었지? 어떻게 다들 아무일 없었다는 듯 일상을 살아가지? 저기에 저 사람들은 모두 끌려갔는데 아무도 관심도 없고 아무 일도 없는 줄 알아. 그렇게 끌려갔는데도 아무도 몰라.
그들이 정말 CSD의 정신을 이어받은 행동을 했네. 진정한 스톤월 항쟁의 정신이야. 눈, 너는 네가 염세주의자라고 말하지만 너는 누구보다 세상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네가 그 곳에 간 것. 거기서 그 사건을 보고 경험한 것. 그 일을 인터넷에 올려 사람들에게 말하고 알린 것. 네가 러시아에 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네가 거기 없었다면 나는 그곳에 그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을 거야. 그리고 나와 같이 사는 친구들도 몰랐을 거고 네 친구들도 몰랐을 거고... 비거니즘 운동가들이 도살장에 들어가는 트럭을 직전에 잠깐 멈춰 세워서 트럭 안에 있는 돼지에게 물을 주는 활동을 하는 거 알아? 그걸 증인 되기라고 부르더라고. 곧 도살장에 들어가 죽는 생명들에게 마지막 증인이 되어주는 것. 너는 2019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어난 퀴어 시위의 증인이 된 거야. 그리고 이 증인은 절대 이걸 잊지 않을 거고 어떤 식으로든 계속해서 말할 거야.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냐.
'성벽 > 우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We are here (0) | 2019.09.28 |
---|---|
어디에서 왔는지 (0) | 2019.08.14 |
디아스포라 (0) | 2019.08.14 |
모두가 손을 잡기까지 걸리는 시간 (0) | 2019.08.06 |
함께 사는 삶에 대해 (0) | 2019.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