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올 해가 한 달 남았다. 2019년을 한 달 남겨두고 쓰는 기록과 근황들.
오래간만에 혼자 온전히 보낼 수 있는 주말이 왔다. 저번 2주 주말 동안은 열심히 놀기도 했고 열심히 일하기도 했다. 2주 전 주말엔 인세가 놀러 와서 인세와 함께 놀면서 보냈고 저번 주는 음악감독님과 회의한다고 1박 2일 함부르크로 갔다. 드디어 혼자서 보내는 주말이 왔고 지금은 잠깐 밖에 나가서 마켓 구경하고 돌아와 오렌지를 까먹으며 부엌 식탁에서 이걸 쓰는 중. 옆에 액셀로가 노트북을 가져와 일하고 있길래 코워킹 플레이스 느낌으로 나도 오래간만에 블로그를 켰다. 2주 동안 너무 정신없어서 오래간만이네.
어제는 샤우뷔네에서 올란도를 봤는데 좋았다. 할 말이 좋다는 말밖에 없어서 따로 후기를 적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3주 전 주말에는 디아멘테라는 작품을 봤었는데 러닝타임이 6시간짜리에 너무 별로였어서 할 말이 없어서 리뷰를 안 적었다. 나중에 짧게라도 기록용으로 둘 다 쓰려는 시도를 해봐야지.
지난 몇 주 동안 읽고 싶은 책들을 찾는 중 타이밍 좋게도 한 친구가 책을 보내주겠다고 해서 택배로 책들을 받기로 했다. 여러 다른 친구들도 책을 보내주겠다고 해서 일단 이 친구에게 받고 다음엔 다른 친구에게 받으면 될 거 같다. 또 읽고 싶다니까 PDF로 스캔 보내준 친구도 있었는데 너무 고마웠는데 너무 수고스러웠을 거 같아서 미안함. 택배 보내주는 친구도 수고스러울 거 같아서 답 택배를 보내주기로 했는데, 독일 정말 마땅히 보낼 게 없어서 며칠째 서로 뭘 보내줄지, 뭘 받고 싶을지 고민만 하다가 어제 샤우뷔네 간 김에 샤우뷔네 굿즈를 보내줄까? 물어보니 좋다고 했다. 드디어 보낼게 생겨서 기쁨. 그리고 이 곳의 크리스마스를 느낄 수 있는 레드 글뤼바인과 화이트 글뤼바인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낮에 잠깐 서경이랑 통화하다가 내년이 내가 연극을 시작한 지 10년째이고 10년째에 포크스뷔네에서 공연을 한다고,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10년 전 처음 공연을 올렸을 땐 내가 10년 뒤에 포크스뷔네에서 공연을 할지 전혀 몰랐었는데. 10년 전이 뭐야 5년 전 대학교 다닐 때도 전혀 몰랐다. 정말 운이 좋다는 이야기를 서경에게 하자 서경이는 운도 실력이야.라고 했다. 요즘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운 좋게 여기서 내년에 공연하게 되었다 라고 이야기하면 다들 가장 많이 대답해주는 말이 '운도 실력이야.'라는 말이다.
지금 같이 작품 하는 연출, 민지 언니는 다른 선배가 소개해준 사이다. 내가 베를린으로 간다고 하자 한 선배가 '내가 아는 후배가 베를린에서 연극 연출 공부하는데 소개해줄게.' 해서 소개받은 사이. 소개해준 선배는 내가 학교 다니며 활동할 때 알게 되었다. 학번으론 한참 높은 선배시고 학교에선 절대 만날 수 없는 학번 차이였지만 내가 한 그 활동 덕분에 만났다. 나는 정말 학교가 싫었고 너무 힘들었고 그 활동을 후회하진 않지만 여전히 힘들 때가 많은데 그럼에도 그 경험이 이런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다. 여전히 학교가 싫지만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소중 한 사람들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만났다.
얼마 전 눈이 해준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최근에 읽었는데 인간의 연대를 만드는 힘은 사랑 따위가 아니라 그들 공동체가 느끼고 겪는 고통에서 오는 힘이래. 그래서 인간의 유대와 연대, 관계를 더욱 굳건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사랑 따위 줄 필요 없고 그들 공동체에게 더 고통을 주어서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고통의 경험을 만들어 주면 된다는 거야. 읽고 한참 웃었어. 사랑은 그들을 분열시킨다며. 누가 사랑을 더 얻고 행복해지면 그 공동체는 분열된다는데 그거 맞는 거 같아. 공유할 수 있는 고통이 사라지면 그들 공동체는 분열된다."
내 고통은 누구와 공유되고 있을까? 친구들? 그 모든 일들을 함께 겪었던 사람들?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
같이 사는 친구 중 한 명이 시리아에서 왔다는 사실을 얼마 전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로렌은 시리아의 퀴어 커뮤니티에 대해 말해줬는데 그들은 정말로 끈끈했고 '진짜' 가족이었다고 했다. 시리아에서 퀴어 커뮤니티를 찾아내지 않으면 혼자서 죽어가거나 죽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서로는 서로를 튼튼하고 견고하게 연결시켜놓고 방어하고 숨겨준다. 그러면서 베를린은 '씬'이지 '커뮤니티'는 아니야.라고 했다. 그 말에 얼마 전에 자살한 케이가 생각났다. 같은 건물에 살았고, 위층에 살았지만 그녀가 자살할 때까지 몰랐던 이 건물에 대해 생각했다. 케이와 가장 친했던 엠마도 그룹챗에 '이 위선자 놀이에 질렸어'란 말을 남긴 채 떠났다. 아직도 위층 엠마의 방과 스포츠룸엔 그들의 짐이 그대로 있다.
인세. 우리 둘의 본명은 같다. 서로가 서로만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에 우린 헷갈리지 않지만 우리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불러야 할지 종종 헷갈리기도 하는 사이. 새삼 깨달은 건 인세가 내 친동생과 같은 나이었다는 거고, 나는 내 친동생과 친하지 않고 교류가 없는 사이라 정말로 인세를 내 동생보다 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인세가 떠나며 이번에 베를린에서 보낸 시간이 여태 베를린에서 보냈던 시간 중에 제일 재밌었다고 말했다.
하룻밤은 인세와 탈코르셋 이야기가 나왔는데, 사실 나는 탈코르셋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공감되는 운동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서 인세가 들려준 한국 평균 여성의 삶은 내 삶과 너무 다르고 동떨어진 것이라서 꽤 충격받았다. 나도 한국에서 나고 자랐고, 20대 초반까진 한국 살았는데 내가 산 곳은 한국이 아니었나? 한국 여성의 삶도 충격적이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보편과 평균에서 멀었다고? 에 솔직히 더 충격받았다. 내가 조금 다르고 이상한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동떨어졌고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는 사람일 줄 몰랐다. 이 이야기를 모모에게도 했는데 모모가 말했다. '네가 아는 모든 한국 여자애들 전부 식이장애 없는 사람 없을 거라고 확신해. 90% 이상이 있을 거야.' 그리고 나에게 식이장애가 있다고 말한 친구들 얼굴이 몇 명 지나갔다. 나는 그 친구들의 경험이라고 생각했는데 대부분이라고 했고 모모가 자기도 있었다고 했다. 정도가 심하고 덜하고의 차이지 없는 사람 찾는 게 더 힘들 거라고.
항상 눈과 모모가 어떤 관계를 만들고 싶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으며 등의 이야기를 할 때 관심과 생각이 없다가 며칠 전 정말 오래간만에 감정적으로 외로웠다. 그럼에도 나는 상상하거나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는다. 모든 소망은 믿고 바래야지만 이루어지는 것인데 나는 애초에 바라지를 않으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안다. 감정적인 것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나는 다시 평온 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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