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Berlin Reloaded를 아주, 막, 방금 보고 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는 후기. 너무 좋아. 최고야. 사랑해.

 

 대학교 때 교수님께서 너희 이거 안 보면 후회한다, 국립극장에서 단 이틀 하니까 보러 가라 라고 말하셨던걸 그 날 이미 예매해놨던 다른 공연이 있어서 보러 가지 않았었는데 정말 교수님 말처럼 후회했었다. 나중에서야 리미니 프로토콜을 알게 되었고 그때 그거 왜 안 봤지 했었지... 다행히 운이 좋게도 리미니 프로토콜 홈페이지에 100% 광주 공연 영상이 올라와있다는 말을 듣고 영상으로 보았다. 영상으로 보고 너무 좋았고 좋아했었어서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는데 또 운이 좋게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엔 영상이 아니라 직접.

 리미니 프로토콜이 20주년을 맞아 12월 21일부터 1월 12일 오늘까지 HAU에서 리미니 프로토콜의 전시와 공연들을 했다. 일주일에 하나씩 차곡차곡 보러 다녔는데 오늘 마지막 날, 마지막으로 100% Berlin Reloaded을 봤다. 정말 이렇게 좋은 레파토리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느 도시든 적용할 수 있는 틀을 가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만들다가 이젠 Reloaded를 했다. 시간이 지나면 도시도 변하니까 다시 만들어도 또다시 동시대성을 가지는 레파토리... 정말 최고의 레파토리 아닐까... 베를린은 12년 전에 '100% Berlin'이라는 이름으로 100% 도시 연작 시리즈를 처음으로 시작한 도시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작품을 만든 도시가 되었다.

 첫 번째 시민은 역시나 통계청 직원 분. 이분은 12년 전에도 함께 했던 분이셨다. 그리고 마지막 100번째 시민도 12년 전에 참여했었고 그땐 갓난아기인 아들과 함께 출연했는데 이번엔 12살이 된 아들과 또 새로 태어난 딸과 함께 출연했다. 12년 전의 갓난아기는 자라서 무대에서 말하고 걷고 뛰어다녔다. 한 명씩 시민들이 나와서 소개할 때 기억에 남는 분이 몇 분 계셨는데 역시 베를린의 아시아인들이 기억에 제일 남는다. 한 분은 자신을 대만에서 온 해피 호모라고 했고 얼마 전에 결혼했으며 결혼식 때 썼던 면사포를 들고 왔다며 머리에 쓰고 나왔다. 다른 한 분은 일본 분인데 후쿠시마 사태 이후 일본에서 살 수 없어서 나와서 산다고 하셨다. 프로그램북에 2018년 기준 베를린에 대한 통계들이 나와있는데 베를린에 사는 아시아인은 5%라고 한다. 정확히 5명을 채우진 않았지만 아파서 나오지 못 한 베트남 여성분과 함께 총 세 명의 아시아인이 베를린의 아시아인들을 대표하여 캐스팅되었다.

 12년 전의 베를린과 비교하여 베를린은 더 어려지고, 더 인터내셔널 해지고 더 커졌다고 했다. 100% 광주에서 외국인은 1%라 단 한 명이 나왔던 기억이 나는데 오늘 본 100% Berlin Reloaded는 독일인이 아닌 사람이 20명이었다. 터키계, 아시아계, 아프리카계, EU 출신의 다른 국가 사람들... 이러한 다른 국적 구성 때문에 맥락이 달라진 장면이 있었다. 

  '투표권이 있는 사람?'이라는 질문 후 투표권이 없는 사람은 무대 뒤로 보낸다. 남은 사람들 중에 '저번 마지막 선거에서 투표를 한 사람?'이라는 질문을 다시 한번 던져 투표를 하지 않은 사람들도 무대 뒤로 보낸다. 투표권이 있고, 투표를 했던 사람들이 만드는 도시를 보고 있으라는 말과 함께. 광주 무대에선 투표권을 가질 수 없는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무대 뒤로 갔고 베를린에선 많은 외국인들이 뒤로 갔다. 같은 질문이지만 맥락이 아주 달라진 장면이라 기억에 남는다.

 가장 충격적으로 기억에 남았던 질문은 'AfD(독일 극우정당)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2명이 그렇다 라고 대답한 장면. 그 장면은 암전 상태에서 후레시 빛을 켜는 게 대답이 되는 구성이었는데 두 명이 불을 켰다. 정말 불편하지만 진실인 그 사실. 우리는 같은 도시에 산다. 그리고 누군가는 내가 이 도시에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100% 도시 연작 시리즈는 질문과 대답이라는 단순한 구성의 반복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보여준다. 질문이란 무언가를 알기 위해 목적을 가지고 물어보는 것이다. 작품은 이 도시를 알아보려는 목적을 위해 계속해서 질문한다. 그리고 무대 위에선 베를린의 대표자로 여겨지기로 한 사람들이 충실하게 대답한다. 사실은 아주 개인적인 대답들이지만 성별, 나이, 국적, 거주지, 결혼 여부라는 5가지 기준에 맞추어 100명을 뽑으면 그래도 대략적으로 이 도시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든다. 베를린 인구가 374만 8148명이니 무대에 서 있는 한 명 당 대략 37,481명을 대표하는 셈이다. 저 무대 위에 나를 대변해 주는 완벽한 단 한 사람은 없을지라도 나의 여러 부분들이 여러 사람에게 함께 묻어있을 순 있겠지라는 착각이 든다. 여성으로서의 나는 한 여성이, 아시아인으로서의 나는 한 아시아인이, 퀴어로서의 나는 한 퀴어가 대신 대답하고 있을 수 도 있다는 착각. 

 아주 여러 가지 질문들이 기억나서 기억날 때 적어놓고 싶다. 특히 마지막 장면. 12년 단위로 자신이 그 후에 살아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모인다. 120년이 지나면 아무도 살아있지 않을 것이기에 모두 모인 사람들이 무대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게 마지막 장면이었다. 120년이 지나면 모두 바스라 사라질 사람들. 그렇지만 지금 다들 여기에 살아있는 이 순간, 2020년의 베를린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모두 모여있다. 무대 위에도 무대 아래에도. 

 

 

  베를린에 새로운 공항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대마 합법화에 찬성하십니까? 12년 안에 결혼한 적이 있습니까? 성매매를 한 적이 있습니까? 당신의 집은 몇 크바입니까? 12년 안에 이혼한 적이 있습니까? 탈세를 한 적이 있습니까? 통일 이후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이주했습니까? 혹은 서베를린에서 동베를린으로 이주했습니까? 아이를 가지고 있습니까? 베를린이 더럽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이를 더 가지고 싶습니까? 사형제도에 찬성하십니까? 누군가를 때리고 도망친 적이 있습니까? 충분히 살았다고 생각하십니까? 감옥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까? 성추행/폭행의 경험이 있습니까? 현재 암을 가지고 있거나 암에 걸렸던 적이 있습니까? 12년 안에 당신이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24년 안에 당신이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36년 안에 당신이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48년 안에 당신이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60년 안에 당신이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72년 안에 당신이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84년 안에 당신이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96년 안에 당신이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108년 안에 당신이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120년 안에 당신이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영상은 리미니 프로토콜 홈페이지의 100% 광주 공연 인포. 100% 광주 공연 영상을 볼 수 있다.

https://www.rimini-protokoll.de/website/de/project/100-gwangju

 

100% Gwangju

Only 1% of Gwangju's population has a non-Korean passport, 6% are over 70 years and 10% between 0 - 10 years of age. 51% of the Gwangjuans are women and…

www.rimini-protokoll.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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