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너에게
오직 퀴어들만이 살아남는다
류우주
2019. 7. 30. 06:27
오늘 오전은 너무 더웠는데 오후부턴 천둥 번개에 비 온다고 예보에 나왔다. 저번 주 내내 더웠어서 이제 비 좀 왔으면 생각했고 오후 6시가 넘자마자 아주 세차게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부엌 식탁에 둘러앉아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빗소리를 들었다. 나는 오리엔탈리즘을 이어서 읽었고 모모는 스크랴빈 음악을 틀고 용은 복숭아를 먹었다. 따뜻한 부엌 조명과 아주 센 빗소리, 더웠던 공기를 차갑게 만든 바람을 쐬며 앉아있는 이 순간이 좋았다. 그냥 비가 아니라 천둥과 번개가 함께하는 하늘이 뚫린듯한 비여서 좋았다. 미피 내리는 비를 보며 말했다. 마치 아포칼립스 같네. 이 비가 끝나면 모든게 퀴어일 거야. 무지개가 뜨고 퀴어들이 있을 거야.
비는 생각보다 금방 그쳤고 오래 내리길 바란 나는 아쉬웠다. 우리는 미성년을 함께 보기로했다. 첫 장면을 보자마자 모모가 이거 백합이야?라고 물었고 용이 그런 거 같은데 라고 했다. 나는 아마 아닐걸...?이라고 답했지만 시작한 지 5분 만에 키스신이 나오는 걸 보고 (로맨틱한 맥락은 아니었지만) 나만 경악했다. 모모와 용은 역시 백합이었다며 너무 좋아 라고 했다. 어떻게 안거야 첫 장면만 보고... 그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 게이더가 사람한테만 되는 게 아니라 작품에도 되는 거였구나.